자동설과 코페르니쿠스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오언 깅그리치 (바다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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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케플러를 쓰고나서 코페르니쿠스를 쓰다니, 조금 순서가 어긋난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의 세계관을 제일 크게 뒤흔든 사람중 하나인 코페르니쿠스를 쓰지않고 넘기기는 더 이상해서 결국은 또 쓰고말았다.

  실제로 우리의 주변환경을 바꾼 발명이나 주장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우리의 생각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왜냐하면 기존의 주장에서 좀더 발전한 경우나 완전히 새로운 주장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비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몇천년동안 지속되어온 천동설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대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대변혁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에서 참사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외삼촌인 바첸로데 대주교의 후원으로 이탈리아에서 대학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일생동안 바첸로데 대주교의 비서와 참사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시간이 날때마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지만 그는 그의 지동설이 야기할 파장을 짐작했기에 죽기 직전까지 그의 논문을 발표하여 책으로 만드는 것을 미루어왔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의 이론을 아는 사람들이 계속 그를 설득하여 그가 죽기 얼마전에 책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가 책의 완성본을 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망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코페르니쿠스의 행동을 보고 소심하다거나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지 못하는 겁쟁이라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그 당시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수천년 동안이나 계속되어온 통념을 단번에 뒤집는 이론을 발표할때 그것을 단번에 발표한다면 그것은 용감하다기보다는 무모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최후의 역작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그 후 수년동안 통념을 뒤집을 수 있는 중대한 씨앗을 숨긴채 잠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후 갈릴레오와 케플러, 그리고 뉴턴에 의하여 그의 지동설은 그 무엇보다도 찬란한 빛을 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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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클리체
유전학의 탄생과 멘델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에드워드 에델슨 (바다출판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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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델은 생전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으나 생후에 엄청난 발견을 한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 중 하나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주요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야할 것이다. 생전에는 오히려 기상학자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논문은 잊혀졌지만 그가 죽고나서 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재탐구되었다. 
 
  그렇지만 멘델 자신으로써는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식물을 가지고 연구했기에 수도원에서의 평온한 삶과 온실, 그리고 생활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었기에 식물 실험에 열중할 수 있었다. 특히 수도원은 온실이 설비가 잘 되어 있었기에 그가 콩을 가지고 유전법칙의 실험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멘델이 얼마나 앞선 생각을 가졌는지는 후대에 그의 발견을 재발견한 학자들의 이론은 오히려 멘델의 것보다 부족한 점이 있었을 뿐더러 그의 논문을 카피했었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멘델의 이론을 잘 이해조차 하지 못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그의 이론이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중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생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수적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연구들로 이름이 유명해졌을때 아마 멘델은 마음속으로 씁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거대한 발견은 존재하는 사실도 잘 모르지만 자신이 잠깐잠깐 한 기상학적 발견을 가지고 이름이 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대에 유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약간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멘델은 여러가지 특징(예를들면 콩이 쭈글쭈글 하다던지)을 가진 한 종류의 콩을 서로 교배를 하여 그 규칙성을 조사하여 3대 1의 비율로 형질이 유전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사실 그 이전에도 3대 1의 비율을 밝혀져 있었지만 그 사실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은 멘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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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클리체
행성운동과 케플러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제임스 R. 뵐켈 (바다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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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법칙을 처음으로 수학적으로 나타낸 사람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리고 케플러는 갈릴레오 시대의 천문학자로써 종종 그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었지만 자주 무시되었다. 또한 그는 그당시의 천문학에서 선두주자에 속하였던 티코의 후계자로써 신성로마제국의 제국 수학자였었다. 그리고 개신교도로 주위의 박해를 받기도 했었고 어머니가 마녀로 지목되기도 했었다.

  케플러는 관찰과 연구를 통해 행성들의 운동 궤도를 연구했었다. 그는 처음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구조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 사이에서 고민을 하였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비록 그의 계산 결과와는 조금 어긋나지만 그 당시의 통념이었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통념과는 어긋나지만 그의 계산 결과와 일치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선택하였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행성의 궤도가 찌그러진 원, 즉 타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 이론을 담은 논문을 여러 학자들에게 무작위로 보냈는데, 그중 한부는 이탈리아의 수학교수, 즉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도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한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하지만 케플러의 편지에 그는 여러번 답변을 하지 않곤 했기에 그들은 연락을 주고받는 입장이라고 하기에도 미묘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에비해서 티코와는 활발한 서신교류를 하다가 결국은 티코의 무리에 끼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 동료들이 티코에게서 떠나가자 티코는 케플러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고 죽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케플러는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만약 케플러가 티코와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는 그의 어머니가 동네 여자의 중상모략으로 마녀로 몰렸다. 그녀는 케플러의 어머니로부터 모욕을 당했는데, 그것을 앙갚음 하기위하여 그녀가 부정한 임신을 했을때 아기를 지우기 위한 약물을 복용하곤 했는데, 한번은 그것이 탈이났지만 그녀의 약을 의심하지 않고 3년전의 케플러의 어머니가 준 약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후에 그것은 그녀가 케플러의 어머니의 재산을 가로채기위한 일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과거의 마녀재판의 부당성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개신교도로써도 주위에서 압박을 받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의 일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는데, 그의 후원자였던 발렌슈타인 공작의 문제등으로 인하여 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리는 일곱 선제후들의 회의에 참석하느라 무리한 나머지 가는 도중에 죽고말았다.  그리고 그의 사후에도 그의 무덤은 누군가에 의하여 회손되어 어디에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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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클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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